2. 동물상태로 끌어내려진 사람들

미국 국회의원 중 만만한 사람을 골라 그럴듯한 초청 이유를 붙여 평양에 불러드린 다음, FAO(세계식량농업기구)나 WFP(세계식량계획) 간부인사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북한의 장차 닥칠 심각한 식량위기 상황을 살짝 귀띔해준다.
눈치를 챈 이 인사는 다가올 참상에 겁을 먹고 귀국하자마자 서둘러 북한 실정을 공론화한다.

<서둘러 손쓰지 않으면 수백만의 어린이가 죽는다!>는 것이다. 인도적 지원을 전국에 호소하게 된다.

1933년에 우크라이나를 방문하면서 기근실태를 외면했던 엘리오(당시 프랑스 사화당수 수상)나 쿠바의 지상낙원?을 보았다는 사르트르(프랑스의 공산주의자 실존주의철학자) 시대는 아니다.
북한 당국자들이 당시의 우크라이나나 쿠바의 권력자들과 공통된 것은 방문자에 대해서 정보조작을 하는 것뿐이다.

북한은 WFP 간부들인 빌기터 칼글렌, 캐트리느 베르티니, 데이빗 모턴 혹은 미국 오하이오주 출신 민주당 국회의원 토니 홀에게 비참한 상황을 골라 보여준다.
그들이 귀국해서 참혹한 운명에 처한 북한의 불행에 무조건 인도적 지원의 손길을 뻗혀야 한다고 호소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해서 서양의 미운 놈, 역사적으로 북한으로부터 유죄선고를 받은 서방측은 언제든지 주는 쪽이다.

최고지도자 가족의 생일잔치에 흥청망청 뿌려지는 돈, 방방곡곡 세워진 수 만개의 동상, 죽은 자의 무덤에 쏟아 부은 달러뭉치, 사정거리를 서서히 늘려가고 있는 장거리 미사일 제조, 近隣 제국을 위협하고도 남는 과잉 軍事力 유지 등은 고려할 여지없이 기증자 리스트에는 매년 똑같은 국가들의 이름이 올라간다.

WFP는 2001년에 81만 톤, 2002년에는 60만 톤의 양곡을 북한에 지원하고 있는데, 많은 부분이 미국에서 제공한 것이다.
한국은 물론 일본, EU도 기증자 리스트 맨 앞에 오른다.
2000년도는 북한의 부족량의 70%에 해당하는 1백만 톤이 국제원조로 충당되었다.

북한정권에 敵國으로 지목되는 국가들이 대거 북한을 원조하고 있는 수수께끼는 어떻게 푸는가?
북한의 경제붕괴, 즉 한반도의 불안정과 전쟁을 피하고자하는 미국, 일본, 중국, 유럽 그리고 상황 당사자일수 있는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의 전략을 알면 스스로 풀린다.
그리고 갑작스런 통일로 일거에 많은 비용이 들 경우 받게 될 韓國經濟가 입을 타격도 고려되지 않나 하는 측면도 부정 못한다.

몇 군데 NGO들, 세계의사단(MDM), 국경없는 의사회(MFS), 반기아행동(ACF)은 북한주민 원조에 앞장섰다.
그러나 이들 조직은 이미 자신들이 제공한 원조가 가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지조차 확인 못한 채 철수해 버렸다.
하지만, 인도적 원조가 몽땅 軍이나 官僚組織에 흘러가 버리고 가장 취약하고, 가장 비참한 꼭 받아야할 저 아래 계급의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다다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다이오스의 물통>인가? 우리말로 비유하자면 밑 빠진 항아리란 말인가?
유엔의 여러 지원국들은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기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말을 되풀이 한다고 해서 무슨 성과가 있는가?
유엔의 원조는 무엇보다도 <<북한의 잠재적인 군사적 위협을 억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外交的 기회 엿보기가 아닌가? 가장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원조의 손을 뻗히기보다 體制를 안정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고 2000년 3월의 ACF 성명은 자문하고 있다.

북한 정치사회의 전체 골격 유지의 계속성을 보증하는 조직인 군대가 북한땅에 있는 모든 財貨의 1차 소비집단이며 다음은 당 관료조직이다.
물론 소비 최상층에는 金正日 一家가 있다.
이런 모순 구조사회에서 가장 곤경에 처한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지원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곡물이나 감자 등 식량 수송열차의 護送兵들이 던지는 돌을 피해 어린이들이 쫓겨 도망가는 광경을 목격하고 서방의 인도주의자들은 대개 강한 혐오감을 느낄 것이다.
ACF 활동 때문에 북한에 3개월 머무른 워레느 D. 멀더니의 다음과 같은 증언을 냉정히 읽을 수 있는 사람 몇이나 될까?

<<여섯 시간 동안, 나는 안경 낀 지독한 녀석한테 들키지 않도록 누더기차림의 불쌍한 아이들을 볼 때마다 포대에서 감자를 조금씩 꺼내 떨어뜨려 주었다.
아무것도 못 본 척하고 불쌍한 아이들이나 여자들이 선로에 떨어진 감자를 줍도록 내버려두고 있는 사내들에 대해 나는 가슴이 메슥거렸다.
각진 굵은 금테 안경은 비열함과, 잘못된 자존심, 그리고 권위에의 욕망, 잘난 척해 보이려는 태도를 얼굴 가득 담고 있었다.
개중에는 어린이들에게 돌을 던지거나 근방을 서성이는 자도 있었다.

그러나 그날 밤, 바로 그들 중 하나가 감자를 주머니 가득 처넣는 것을 나는 보았던 것이다.
감추어진 그 어쩌지 못할 가난에 대해서 그리고 이미 국제원조라는 이름으로 달러를 손에 넣은 이상, 이제 더 이상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버려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나는 가엾은 생각이 들었다.

경고의 호각소리가 요란한 가운데서도 내가 선로를 따라 떨어뜨려 준 감자를 모두 주워 모아 감시병에 욕을 퍼붓던 가엾은 여자에 동정한다.
이 사람들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 이 驛의 커튼 뒤에는 무엇이 감추어져 있는 것일까? 상상할 용기는 내게는 없다.
이 사람들을 돕겠다고 여기에 더 이상 오래 머무는 것도 부질없는 짓이라고 슬프지만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의 권력은 우리들 보다 강할 뿐만 아니라 무엇부터 무엇까지 모든 것이 저들의 지배 하에 있다.
저들은 형용할 수 없는 恐怖를 조성해서 知識人들을 마비시키고 나머지 住民 모두를 동물상태로 끌어내린 것이다.>>

華山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