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4일자 모 중앙 조간지의 헤드라인은 “김정일, 남북 정상회담 희망”이 차지하였다.

그러나 이날 저녁 정시 TV 뉴스에서 청와대가 북한 조문단이 어제 남북 정상회담을 희망한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메시지를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일부 언론이 보도한데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공식 부인함으로써 남북정상회담은 하루사이에 냉온탕을 오고갔다.

남북정상회담은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과 국가정책에 미치는 영향의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발표 전에 핫라인을 통하여 서로의 의사를 타진하고 조율하여 서로가 합의한 날자와 시각에 발표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런데 이번 정상회담 관련 진행을 보면 회담을 하려는 진정성이 결여된 채 국가질서를 흔들어 정부의 권위와 체통에 먹칠을 하여 국민과 정부사이를 이간하려는 고도의 선전 선동적 의도가 배어있음을 볼 수 있다.

우선 그들의 입국절차부터 정부를 무시한 처사였다.

그들의 신분은 특사조문단이다.

고위층에서 특별히 보내는 조문단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김정일의 대형 조화를 가져왔다.

다른 나라의 정부조문단은 정부에 조문을 통지했다.

정부에서 주관하는 국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은 임동원과 박지원에게 조문 올 것을 통지했다.

이는 무슨 의미인가? 정부를 무시하고 임동원과 박지원의 위상을 높여주려는 장난 아닌가?

그들이 정부에 조문을 통지하고 정부가 수락하는 절차가 없었는데, 그들이 타고 온 전용기는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국경을 침범한 것이다.

김대중 평화센터에서 정부에 보고했겠지만, 정부는 북한이 공식으로 정부에 통지할 것을 요구하여 정부행사에 참석하는 형식은 취해야 했다.

그들은 가족장에 개인자격으로 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통일부 차관이 평화센터를 찾아가 그들을 만났다.

외국의 특사를 주한 대사관에 가서 만난 격이다.

외국특사나 대사는 반드시 외무부를 방문하여 장차관을 만난다.

장차관이 대사관을 찾아가 만나는 법이 없다. 국격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평화센터는 슬그머니 주한 북한 대사관이 되어버렸다.

정상회담 같은 민감한 이슈는 대통령을 만나기 전까지는 극비사항이다.

그것이 국가원수에 대한 예의이고 절차이다.

그런데 북한 조문단의 일원인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은 22일 접촉한 정부 측 핵심인사에게 “이명박 대통령을 꼭 만나 뵙고 3차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김 위원장의 뜻을 전달하고 싶다”고 하여 김 부장의 발언이 청와대에 전달됐단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 대통령은 23일 청와대에서 김기남 노동당 비서, 김양건 통전부장, 원동연 조선아태평화위 실장을 30분 동안 면담했다.

청와대 측은 “남북 협력의 진전에 관한 김정일 위원장의 구두 메시지가 전달됐지만, 외교관례상 내용을 공개할 수는 없다”고 밝히면서 김정일의 정상회담 제의는 부인했다.

이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우리 정부는 언제, 어떠한 수준에서든 남북 간의 모든 문제에 대해 대화와 협력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천명한 바 있음으로 만일 김정일이 정상회담을 제의하였다면 의제와 절차는 실무진에 맡기더라도 원칙적으로 수락했을 것이다.

그런대 청와대에서 정상회담 제의를 부인한 것을 보아 북측에서 이 대통령에게 제의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런대 이와 같은 보도가 나간 것은 김양건이 정상회담제의를 미리 흘린 것에 연유한다.

정상회담이 불발되면 이 대통령의 8.15 제의가 위선이라고 덮어씌우기 위한 술수이다.

조문을 하겠다는 집단이나 초청한 단체나 모두가 국장의 참석절차를 무시한 것은 너무 황당하고 기막힌 행태이다.

북한은 이번 조문을 빌미로 남북문제에 조금씩 화해 제스처를 보이는데, 이것 또한 북한의 대남전략의 일환일 가능성이 높다.

며칠 전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이 방북해 북한과의 경협사업을 일방 합의한 것도 그 연장선일 뿐이다.

정부의 대북정책에 있어 민간기업이 정부와 협의도 없이 사업을 확정한 것도 그렇지만, 그것을 무슨 큰 선물이나 받아 온 것처럼 공식발표하는 것 역시 치졸한 처사이다.

이번 북한 조문단 요청과 방문이 증명해 주듯이 대북정책은 아직도 대한민국 정부가 아닌 비영리민간단체가 주도하고, 이미 실패로 끝난 '햇볕정책' 역시 아직도 그 시절 그 사람들이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재차 확인됐다.

지난 정권이 길들여 놓은 퍼주기식 대북정책이나, 보채는 아이 젖 물리기식 정책은 남북 모두에게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자칫 잘못하다간 북한의 고도의 대남전략에 말려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을 깊이 상기해야 한다.

어쩌면 처음부터 정상회담에는 뜻이 없었고 김정일의 조화가 국빈대우를 받도록 하기위해 고도의 책략을 구사한 듯도 하다.

김포공항에 도착했을 때도 조화가 먼저 내리고 조문단이 내렸으며 조문단을 남겨놓고 전용기가 먼저 떠났다.

전용기를 이용한 목적이 조문단 운송이 아니라 조화 수송에 있다는 말이다.

북한군 총참모장 리영호 대장이 국장 직후 24일 평양 4.25 문화회관에서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혁명 영도’ 49주년 중앙보고 대회에서 “제재에는 무자비한 보복으로, 대결에는 전면대결로 대답하는 것은 우리 군대와 인민의 변함없는 입장”이라고 도발적으로 천명한 것이 정상회담의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해주고 있다.

지금처럼 특정 비영리민간단체가 대북 통로역할을 하고 남북관계를 자기들 의도대로 주무르게 놔둬서는 결코 안 된다.

따라서 정부는 앞으로 대북정책에 있어 좀 더 분명한 원칙을 갖고 대응해 주기를 강력히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