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사실로 확인된 트로이 전쟁은 황금사과 한 개에서 시작되었다.

아킬레스의 부모가 된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에 많은 하객들이 초대되었으나 초대에 빠진 불화의 여신 엘리스는 너무 화가 나서 자기를 초대하지 않은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 축하연에 뒤늦게 나타나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씌어진 황금사과를 던지고 사라진다.

축하연에 참석했던 아프로디테와 헤라, 아테나는 제각기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던 터라 황금사과의 주인이 마땅히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서로 우기면서 싸우게 된다.

양치기 미소년 파리스에게 헤라는 권력과 부귀를, 아테나는 전쟁에서의 승리와 영광을,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황금사과의 댓가로 주겠노라고 각각 제의한다.

어린 미소년답게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흥정을 받아들여 황금사과의 주인을 아프로디테로 지목하고 그리스의 최고 미인인 헬레나와 결혼하여 트로이에서 살게 된다.

그러나 헬레나는 이미 그리스의 메넬라오스 왕의 아내였다.

아름다운 아내를 빼앗긴 메넬라오스 왕은 복수에 불타며 아내를 되찾기 위해서 그 길고긴 트로이 전쟁을 시작하게 된다.

불화의 여신 엘리스가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게 라고 쓴 황금사과를 美에서라면 결코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세 여신 앞에 던진 까닭은 질투야말로 불화와 반목의 첫째 조건임을 잘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자신이 갖추지 못함으로 인한 시샘에서 생기는 질투의식은 보기에도 음산하고 스스로 교만의 질곡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상대의식이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무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 저울질을 하고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있어 법적으로 적법할지 모르나 대통령 출마는 법적으로만 따질 수 없는 복잡하고 미묘한 여건과 명분을 고려해야하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다.

그런데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이 전 총재와 이 후보 간 갈등이 이 전 총재 출마설의 원인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두 사람 사이 갈등의

첫 번째는 서울시장이었던 이 후보가 모 주간지와 인터뷰에서 “솔직히 노무현 이회창을 놓고 인간적으로 누가 더 맘에 드느냐 하면 노무현이다. 이쪽(이회창)은 너무 안주하고 주위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 게 보도되면서 였다.

이 전 총재 측이 비례(非禮) 극치라고 펄쩍 뛰었다.

이 후보는 곧 “진의와 달리 전달됐다. 이 전 총재는 당과 나라를 위해 받들고 모셔야 할 어른”이라고 해명했다.

두 번째 갈등은 한나라당 경선 후인 8월 28일 두 사람 간 회동이 무산됐을 때다.

이 전 총재 측은 배탈을 이유로 만남을 미뤘다.

그러나 주변에선 이 후보가 YS만 챙겼기 때문이란 얘기도 나왔다.

이 후보는 경선 다음날인 8월 21일 YS와 만찬을 했다.

지금의 한나라당을 있게 한 건 나라고 생각하는 이 전 총재로선 YS를 앞세우는 이 후보가 마땅찮을 것이란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세 번째 갈등은 이달 초 최돈웅. 김기배 전 의원과 대변인 역할을 했던 이종구 특보가 이 후보를 돕겠다는 의사를 전하자 이 전 총재가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내 사람 빼가기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재오 최고위원이 수습하기 위해 부랴부랴 이 전 총재를 찾아가 이 후보와의 회동을 잡았다.

이 전 총재는 회동 당일에도 약속 장소에 갈지 망설였을 정도로 화가 덜 풀렸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이 후보가 YS를 챙기고 최돈웅, 김기배, 이종구씨 등을 이 후보캠프에 부른 것이 잘 못인가?

대통령을 한 분과 못한 분 중 한분을 더 챙기는 것을 두고 화가 났다면 질투일 것이다.

그리고 최돈웅, 김기배, 이종구씨 등이 자기 새장에 갇힌 애완용 새인가?

그들도 모두 독립된 인격체일진데, 그들이 더 높은 하늘을 향하여 비상하는 것을 도우지는 못할망정 가두어 두려는 발상은 이미 그때부터 출마의 생각이 있다는 반증이며, 그렇지 않다면 질투일 것이다.

그리고 이 후보가 “솔직히 노무현 이회창을 놓고 인간적으로 누가 더 맘에 드느냐 하면 노무현이다.”라고 한 발언은 신중치 못한 측면이 있지만, 이 후보가 정중하게 사과했으면 되었지 이를 두고 앙앙불락한 것은 원로다운 처신이라고 볼 수 없다.

숭실대 강원택 교수는 이를 두고 “단순한 감정상 갈등을 넘어서 내가 아니면 안 된다. 나여야 잘 할 수 있다는 권력의지의 충돌처럼 보인다.”고 해석했다.

이회창 전 총재는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으려 몸부림치는 국민들의 여망을 생각해서라도 엘리스의 황금사자를 한나라당과 국민의 잔치에 던져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