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투트랙 방식,' 친일, 인권탄압에 국한.. 한나라당, 중립인사 중심, 친북, 용공 문제 포함 -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20일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한 포괄적인 조사를 위한 국회 논의기구 구성에 대해서는 같은 목소리를 냈으나, 조사기구의 성격과 형식, 조사대상 등 실질적인 내용에서는 워낙 시각차가 커 접점을 찾지 못하고 논란을 거듭하고 있어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등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속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동안 과거사 진상규명에 소극적이었던 한나라당은 당초 입장을 바꿔 일단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국회내 과거사특위 설치안에 반대하고 대신 국회밖에 중립적 학계 인사가 중심이 된 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주장했다.

그리고 조사 범위에 해방시기와 6-25 전쟁 당시의 친북(親北) 용공(容共) 행위까지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대표는 지난 19일 "해방이후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대립하던 시기에 누가 국가안보를 지켜냈는지, 6-25전쟁에서 누가 나라를 구했는지 제대로 따져보자"고 말한 것이 한나라당이 친북, 용공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에서 손해볼 것이 없다는 인식의 반영이다.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은 80년대 민주화운동도 제대로 검증해보자는 입장이다.
 
당시 민주화운동 세력이 군사독재에 의해 피해를 본 것은 사실이지만 이중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전복하려 했던 친북 세력을 걸러 내보자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하의 친일행위과 유신 등 독재시대의 인권유린 및 의혹사건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는 열린우리당은 이같은 야당의 주장을 "과거사 조사를 무산시키려는 물타기 시도"라며 비난하면서 과거사 관련 입법을 다룰 국회 내 특위와 국회 밖의 중립적 기구를 병행 설치하는 '투 트랙(two track)' 방식을 제안했다.

여야는 내주 초 원내수석부대표 회담을 속개해 과거사 문제에 대한 협의를 계속할 예정이나 양측간 대립이 계속될 경우 협의가 지지부진해질 공산이 높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과거사 문제가 불거진 이후 줄곧 수세적 입장에 있었던 한나라당이 모처럼 활기를 띠었다.
박 대표가 19일 기자간담회에서 과거사 조사에 대한 포괄적 수용입장을 밝힌 뒤 '할테면 한번 해보자'는 기류가 강하게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 대표가 이 자리에서 "박정희 전대통령을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말라"며 박 전대통령에 대한 일정한 선을 그어준 데 대해 상당히 고무된 표정이었다.

따라서 주요 당직자들과 의원들은 마치 생각의 봇물이 터진 양 백가쟁명(百家爭鳴)식 과거사 해법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속마음은 과거사 조사를 안했으면 하는 '이중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당초 '1순위-과거사 조사 반대, 2순위-친북행위를 포함한 과거사 조사'순으로 내부 정리를 한 한나라당으로서는 1순위를 희망했지만 여론 및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 민주당 등 정치권 압박 등을 감안해 어쩔 수 없이 2순위로 밀려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한구 정책위의장은 "정부, 여당이 자꾸 추진하려는 정치적 목적의 '과거사 파헤치기'에 법안마다 00억원 내지는 500억원이 소요돼 전체적으로 몇천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면서 "경제도 어려운 데 이 돈을 저소득층과 신용불량자 문제 해소에 쓰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비판해 이같은 속내를 드러냈다.

따라서 한나라당으로서는 박 대표의 전격적인 대안제시로 과거사 문제의 공은 일단 여당 쪽으로 넘어갔다는 판단 아래 "대안 수용이냐" 아니면 "과거사 캐기 중단이냐" 중 택일하라고 몰아붙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이날 염창동 당사에서 열린 주요당직자회의에 참석해 "일제와 싸우면서도 도산 안창호 선생은 '과거에 사는 자가 아니라 미래에 사는 자가 되자'고 역설한 바 있다"고 소개하면서 "정치권이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미래전략특위를 조속히 가동해 국민에게 희망과 비전을 줘야 한다"고 촉구한 것도 이러한 전략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신기남 전 의장의 사퇴로 '과거사' 문제의 걸림돌을 제거한 것으로 판단하고 과거사 진상규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의 친북, 용공 등을 포함한 포괄적 과거사 진상규명 입장에 "(조사대상의) 개념을 명확히 해오면 논의하겠다"면서 재반격 하고 있다.

친일행위와 유신 치하의 인권침해 등 크게 두가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열린우리당으로서는 "박 대표가 진상규명을 사실상 무산시키려는 의도를 갖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지만 박 대표의 수에 말려들지 않고, 이를 활용해 과거사 청산에 본격적으로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열린우리당은 박 대표를 겨냥한 공격을 늦추지 않고 있다. 이부영 의장은 20일 가진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박 전 대통령이 해방 후 공산주의자로 변신해 프락치 활동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공세에 가세했다.

이 의장은 이날 "그분이 뜻한 바 있어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고, 가장 우수한 성적이었기 때문에 일본육사에 들어가 일본 엘리트 장교로 중위까지 됐다"면서 "해방이 되자마자 8-15 이후 변신을 해서 독립군 광복군 제4지대에 합류하고, 그 뒤에 공산주의자로 변신을 해 군내 프락치의 총책이 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의장은 "그러다 김창룡의 방첩대에 잡히니까 자기가 포섭했던 사람을 모두 다 불어 그 사람들을 죽게 하고 자기는 살아났다"고 밝히면서 "이런 일들은 지난 냉전시대에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굴곡 된 개인사들과 일에 대해 이제는 역사로서 정리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공세는 늦추지 않았다.
 
특히 이 의장은 한나라당을 겨냥해 "박 전 대통령 한분의 문제 때문에 그의 그늘 뒤에 숨어서 과거사 청산 자체를 막고 무산시키려는 것이 온당한 일인가"라고 비난하면서 "과연 한 나라의 리더가 변신과 배신을 통해, 많은 사람을 희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과정을 통해 (대통령으로) 올라간 것이 옳은 일인지, 앞으로 또다시 국가의 리더로 그런 사람이 등장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얘기를 해보자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또한 이 의장은 과거사 조사에 '중립적이고 검증된' 학자를 참여시켜 친일, 유신독재뿐 아니라 6.25 전쟁 당시 피해, 냉전시대 친북 활동 등도 따지자는 박 대표의 '역제안'도 일축했다.
이 의장은 "우리 민족을 수탈하고 박해한 잘못과, 냉전시대 한반도 남쪽에서의 피해를 밝혀내고 바로잡는 일에 가해자가 참여하겠다는 것"이라며 "그런 역사인식을 대단히 우려스럽게 생각한다"고 주장하면서 사실상 한나라당을 '가해세력'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이 의장의 이같은 언급으로 인해 과거사 조사대상 범위를 둘러싼 여야의 공방이 격해질 것으로 보여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심원섭/정치전문대기자 dailypen@massmedi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