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병희>

본인은 사퇴 거부, 당내 여론 책임문제 놓고 의견 엇갈려.. 한나라, 신기남 의장에 동정심 발휘 -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이 선친의 일본군 헌병 오장 복무사실과 관련해 은폐와 변명으로 일관하다 뒤늦게 시인해 논란이 일어나는 등 거취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신 의장은 지난 16일 선친의 친일 행각을 집중 적으로 다룬 <신동아> 9월호 내용이 알려지기 전까지만 해도 "선친은 일제 때 교사만 했을 뿐"이라면서 "의혹을 제기한 언론에 강경 대응하겠다"고 주장하는 등 초지일관 사실무근임을 강조한 바 있다.

특히 최근 신 의장의 부친이 일제시대 '친일경찰'이었다는 의혹이 인터넷 등에서 확산되자 신 의장 측은 "(부친은) 화순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다 해방 후인 1946년 경찰에 입문했기 때문에 친일 경찰과는 무관하다"고 반박하면서하면서 "(이러한 의혹 제기는)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 개정안의 순수성을 왜곡하기 위한 의도인 것 같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16일 발매된 <신동아> 9월호에서 부친인 신상묵씨의 일본군 복무사실에 대한 정확한 자료와 증거, 증인 등을 내세운 기사가 나오자 신 의장을 곧바로 시인한 것이다.

<신동아> 보도 내용에 의하면 "신상묵씨는 1938년 3월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전남 화순군 청풍국민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40년 7월 25일 일본군에 지원, 조선총독부 국군병지원자 훈련소에 입대했다. '시게미쓰 구니오(重光國雄)'로 창씨개명 한 신씨는 훈련소를 수료한 직후인 같은 해 11월 8일 반도호텔에서 일본군 지원병 수료생 자격으로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좌담회에 참석했다.

매일신보는 이 좌담회를 같은 해 11월 30일부터 8회에 걸쳐 연재했다. 매일신보 보도에 따르면 신씨는 좌담회에서 "나는 반다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절대로 복종하야 되겟다는 정신수양을 하게 되엇습니다(맞춤법은 당시 원문 그대로임)"라고 입대소감을 밝혔다. 신씨의 대구사범학교 5기 동기생인 송재천씨는 "43년 6월 충북 옥천 죽향국민학교 교사로 재직할 때 일본군 헌병 오장 군복을 입은 신씨가 말을 타고 집으로 찾아와 '일본군 헌병으로 근무하고 있다.

일본군 징병 기피자들을 찾고 있는데 정보가 있으면 가르쳐달라'고 해'모른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구사범학교 동기생인 송성욱씨는 "40년 경북 영일군 죽남국민학교 교사로 근무할 때 신씨가 일본군 지원병이 됐다는 신문 기사를 읽고 놀란 기억이 있다. '신씨는 교사 경력이 있어 일본군에 들어간 뒤 헌병이라는 좋은 보직을 받았고, 해방 직전엔 조장(상사)까지 진급해 부산에서 근무했다'는 얘기를 동창들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고 돼 있다.
 
일본군 헌병 '오장(伍長)'이란 일제강점기 헌병 하사관 계급으로 직책은 통상 분견대장이다.
올 3월 국회를 통과해 9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친일진상규명법은 친일반민족행위 조사대상자를 '헌병 분대장 또는 경찰 간부로서 무고한 우리 민족 구성원의 감금 고문 학대 등 탄압에 앞장선 자'로 규정했으나 지난달 중순 열린우리당이 중심이 돼 국회에 제출한 같은 법 개정안은 '군경에서 소위 또는 경시(총경) 이상의 고등관과 일제에 협력한 행위가 현저한 일반 군경'을 조사대상으로 확대했기 때문에 헌병 오장이었다는 것만으로 조사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며 구체적인 친일 혐의가 입증돼야 조사대상이 된다.

이같은 <신동아> 보도와 달리 신 의장 홈페이지에는 부친에 대해 "6-25 당시 충청, 전라, 경상 전투를 책임진 서남지구 전투사령관으로 용맹을 떨쳤다. 최고의 무공훈장을 수훈하셨다. 화엄사를 불태우려는 군 일부의 주장을 막아내어 민족문화유산을 지켜낸 장본인이며, 살생을 억제하는 인화전략으로 지리산 일대에 평화를 정착시킨 분"이라며 "주민들이 세운 공덕비가 남아있다. 부친의 기개를 이어받은 신기남은 해군 전투장교를 자원하여 거친 바다위의 전투함에서 나라를 지켰다"고 기술돼 있었다.

이러한 사실이 증폭되자 당시 부산을 방문중이었던 신 의장은 그날 오후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선친은 일제시대에 대구사범을 졸업하고 교사 생활을 하다 군에 입대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시인하면서 "선친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하지만 목숨을 바쳐 싸운 독립 투사와 유족들에게는 부친을 대신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신 의장은 "선친도 친일진상 규명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고위직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조사하겠다면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덧붙였다.
 
또한 신 의장은 "(선친이 일본군 헌병이었다는 사실을) 일부러 숨긴 것은 아니며, 언젠가 밝혀질 날이 있으리라 생각했다"며 "조금도 사심없이 밝힐 것은 밝히고, 책임질 것은 책임지고 할 일은 하겠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어 신 의장은 "친일진상규명은 선친의 활동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국가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하며, 우리당의 기본정책으로 수행하는데 앞장설 것"이라며 "과거사 규명과 보상 및 명예회복을 바탕으로 갈등을 극복하고 화해의 미래를 건설하는 작업을 금년 내로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신 의장은 당내외에서 대두되고 있는 의장직 사퇴여부와 관련해 "절대 가볍게 처신할 일이 아니다"며 "국민과 당원의 여론을 지켜보면서 중지를 모으겠다"는 답변만 되풀이하는 등 일제치하 일본군 헌병으로 복무한 부친의 행적을 놓고 아들인 자신이 결과적으로 말을 바꾼 꼴이 되면서 개인은 물론 과거사규명에 나선 여권 전체에 부담을 지웠지만 당분간 사퇴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신 의장의 선친이 일제시대 헌병대 오장으로 복무했다는 <신동아> 보도가 사실로 드러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무엇보다 신 의장이 말을 바꾼 데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으며, 의원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한결같이 "그것이 사실이냐"고 반문했고, 일부 의원들은 의장직 사퇴를 거론하는 등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열린우리당은 이달 임시국회에 상정할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 처리에 제동이 걸릴까 우려하면서 여론 동향에 촉각을 세우는 모습이다.

민족정기모임 회장으로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한 김희선 의원은 "왜 그것을 감췄느냐"면서 "지도자가 되려면 아픔을 털고 갔어야 했다"고 유감을 표시했으며, 문학진 의원은 "악재다. 책임을 지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사과로써 여론이 잠재워지지 않으면 거취를 표명해야한다"며 강력하게 사퇴를 촉구했다.

안영근 제1정책조정위원장은 "일제시대 선친의 행위에 대해 스스로 알고 있으면서 거짓말을 한 것은 국민을 속인 것"이라며 "더 이상 국민에게 할 말이 없으며 빠른 시일 내에 책임을 져야하고, 정치할 자격이 없다고 본다"고 사퇴 요구에 힘을 보탰다.

우원식 의원도 "지금은 과거사 규명을 시도하려는 아주 중요한 시기"라며 "의장 스스로 도덕성을 훼손한 데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같이 당내의원 일부가 신의장의 사퇴를 공개적으로 촉구하고 있고, 신 의장의 측근도 "(신 의장은)자리에 연연할 생각이 없으며 당 지도부 공백 등 후속문제 등에 대한 의견수렴을 거친 뒤 2-3일 안에 결정할 것"이라고 말해 조만간 신 의장의 사퇴결단이 가시화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는 게 당내외의 관측이다.

하지만 천정배 원내대표는 "부친이 일본군 헌병이었다는 것으로 인해 연좌제의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며 "적극적 은폐나 거짓말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문책을 요구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고 사퇴론을 일축했다.

신 의장 책임론과 관련해 당내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으나 신 의장의 사퇴가 여권내 역학관 계의 근본을 흔들 수 있는 중대변수라는 점을 감안할 때 신 의장이 당장 물러날 것으로 보는 시각에는 무게가 실리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신 의장의 사퇴는 지난 1월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상임중앙위원 5명 중 이미 1위를 차지했던 정동영 전 의장이 물러난데 이어 4위를 한 김정길 위원도 사퇴해 과반인 3명이 물러나는 격이 된다는 점에서 신 의장의 퇴진은 현 지도체제에 대한 정통성 시비를 불러 지도부 총사퇴 및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신 의장이 지난 6-5 지방 재.보선 참패에 따른 책임론이 비등한 와중에서도 당 의장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이같은 여권내 권력지형 및 일정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신 의장으로서는 자신이 정파적 이해관계 때문에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으로 비쳐질 경우 정치인으로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라 전격 사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또한 과거사규명 문제와 관련해 야권으로부터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공격받아온 여권으로서는 사안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신 의장을 '디딤돌'로 밟고 넘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등 이번 파문을 계기로 '과거사 드라이브'에 박차를 가하자는 의견도 사퇴론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친노(親盧)성향의 직계그룹이 언급을 자제 한 채 사퇴 불가피론쪽에 다소 기운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를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편 그동안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 수세적 국면에 몰렸던 한나라당은 신 의장 선친의 일제시대 헌병복무 사실이 드러나자 역공에 나서는 등 공세 전환에 주력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으로서는 총반격에 나서기보다는 신 의장의 경우를 통해 모든 사람이 과거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역설하고 과거 행적에 대한 단죄보다 '화해'를 강조하는 등 '과거사 들추기'의 부당성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했다.

우선 여권의 대(對) 한나라당 공격의 선봉에 섰던 김덕룡 원내대표는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신 의장이 여당 지도부는 순백한 것처럼 했는데 대통령 말대로 3대를 떵떵거린 친일집단이라는 게 드러나 충격이 아닐 수 없다"면서 "이중적 행동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김형오 사무총장은 "아버지의 일을 (아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전근대적. 봉건시대에나 있을 일"이라고 옹호하면서도 "그러나 국민을 속이고 거짓말하는 것은 공인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면서 공세에 가세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신 의장의 거취문제에 대해서 거론하기는커녕 오히려 신 의장을 희생양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감싸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선친의 문제로 신 의장이 타격을 입을 경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논란과 관련,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게도 정치적 후폭풍이 미칠 수 있음을 의식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에 따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같은 기류는 전여옥 대변인이 논평에서 "우리 모두의 아픈 역사다. 열린우리당은 '악재'라고 정치적 반응을 해서는 안 된다"면서 "신 의장을 희생양으로 삼아 책임지라고 벼랑끝에서 몰아세워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데서도 잘 알 수 있다.
 
반면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은 신 의장의 부도덕성을 지적하며 사퇴를 촉구했다. 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은 논평에서 "신 의장은 부친의 친일 경력을 정치 지도자로서 감춰온 부도덕한 태도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모든 당직에서 사퇴할 것을 충고한다"면서 "이는 신 의장의 존재가 친일 과거사 청산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어 지도급 당직을 맡는 것이 부적절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박 대변인은 또 "신 의장 부친의 친일 경력이 '친일 과거청산'이라는 역사적 과제와 국민적 요구를 좌절시키기 위한 '힘 빼기'에 악용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장전형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과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인인 여당 대표가 거짓말로 국민을 속였다는 점이 문제"라면서 "입만 열면 과거청산 운운하는 사람이 정작 자신의 치부는 꼭꼭 숨겨두고 남을 공격한다면 어떤 국민이 수긍하겠는가"라고 공격했다

장 대변인은 또 "이렇듯 국민을 속이는 부도덕한 사람이 최일선에서 정권의 홍위병 노릇을 하고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라며 "국가기강과 역사는 바로 세우는데 이러한 부도덕한 사람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며 사퇴를 강력하게 촉구했다.

심원섭/정치전문대기자 dailypen@massmedi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