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과오' 조만간 전 국민 대상 사과 가능성 시사.. 열린당 '개인차원'의 사과에 불과 -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지난 12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재임시 김 전대통령에게 끼쳤던 '유신 탄압'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를 해 배경과 앞으로 이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어떤 식으로 풀어갈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 대표는 이날 전직 대통령 연쇄 면담 마지막 순서로 '김대중 도서관'에서 김 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아버지 시절 여러가지로 피해를 입으시고 고생한 데 대해 딸로서 사과말씀 드린다"며 '유신 독재'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를 했다.
 
박 대표는 그동안 여권을 비롯한 당내 일각에서조차 '유신사과'를 제기해왔으나 "지난 25년동안 기회가 닿을 때마다 누차 사과해왔다"고 주장하면서 재차 제대로 된 모양을 갖춰 사과하는데 대해서는 상당히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날 처음으로 김 전 대통령에게 '예(禮)'를 갖춰 공식적으로 사과한 것은 형식적으로는 김 전 대통령 개인에 대한 사과라고 할 수 있으나 조만간 '유신 과오'에 대한 대(對)국민 사과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박 대표는 이를 계기로 현재 정치적 행보에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되고 있는 정수장학회 문제도 일정한 '모양새'를 갖춰, 결단의 형식으로 정리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박 대표는 정수장학회 문제가 불거지자 주위사람들에게 "그 문제는 나에게 맡겨달라"며 적당한 시기에 물러날 뜻이 있음을 내비쳐왔기 때문이다.

박 대표의 이같은 태도는 '반(反)한나라당 정서'가 강한 호남 및 '반(反)유신'으로 대변되는 민주화세력과의 관계개선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즉 차기대권주자인 박 대표로서는 두 세력과의 화해가 없이는 정치적 입지를 넓혀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박 대표도 이날 김 전 대통령과의 면담 자리에서 "호남 사람들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게 적은데 앞으로 많이 도와주길 바란다"고 요청하는 등 노골적인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이에 김 전 대통령은 "나의 정치활동 가운데 가장 미진했던 게 바로 지역화합, 지역감정 해소를 이루지 못한 것이었다"고 자평하면서 "그러나 박 대표가 적임자이기 때문에 잘해주길 바란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해 적지 않은 힘을 실어주었다.
 
박 대표의 '호남과의 화해정책'은 당 차원에서도 적극 뒷받침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나라당은 오는 28일부터 30일까지 의원 연찬회를 전남 담양이나 구례에서 개최할 예정이며, 특히 프로그램의 하나로 의원들이 전-남북과 경남지역을 지나는 섬진강 강줄기를 따라 행군한 뒤 영호남 화합의 상징인 화개장터를 방문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당지역화합특위는 호남지역 단체장들과 만나 예산 및 지역현안에 대한 협의회 개최를 계획하고 있으며, 남경필, 원희룡, 정병국, 권영세, 박형준 의원 등 개혁성향의 소장파 의원들은 호남 지역에 '지역구 갖기 운동'을 벌여 호남지역의 대변자로 나설 방침이다.

한편 김 전 대통령은 당사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퍼스트레이디까지 지낸 박 대표로부터 선친인 박 전대통령과의 얽힌 과거사에 대한 '정중한 사과'를 받고 오랜 세월 묻어뒀던 복잡한 소회의 일단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두사람의 회동에 배석했던 김 전 대통령측 최경환 비서관의 말에 따르면 박 대표가 "아버지 (재임) 시절 피해와 고생하신 것에 대해 딸로서 사과한다"고 공식사과하자 김 전 대통령은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과거의 일에 대해 그렇게 말해주니 감사하다"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사실 김 전대통령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 전 대통령과 맞대결을 벌인 이후 정치권의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면서 미국망명과 가택연금 등 정치적 탄압을 받은 것은 물론, 1973년 8월에는 중앙정보부(KCIA) 요원들에 의해 도쿄(東京)에서 납치돼 생사의 갈림길에서 생환하는 등 수차례에 걸쳐 생명의 위협을 받는 등 숱한 고초를 겪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김 전 대통령의 이날 소회는 담담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배석자들의 전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전 대통령은 "과거의 일에 그렇게 말해주니 감사하다"면서 박 전대통령에 대해 "정치를 하면서 (내가) 박 전 대통령의 최대 정적이었던 것은 사실인데, 박 전 대통령이 국민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준 것은 역사적으로 평가할 만 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 전 대통령이 자신을 박 전 대통령의 '최대 정적'이라고 한 표현 속에는 3공화국과 유신시절의 역사, 그리고 그 격랑 속에서 자신과 박 전 대통령의 숙명적 관계 등이 깊게 녹아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또한 김 전 대통령은 박 대표가 "아버지의 기념관에 대해 어려운 결정을 해주신 것도 다시 한번 감사 드린다"고 재임중 박정희 기념관 건립결정을 내린 데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하자 "기념관 문제를 푸는데 최대의 정적인 내가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공과(功過)는 공정하게 평가하는 것이 국민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김 전 대통령은 박 대표에게 지역갈등 해소와 남북간 평화적 교류 협력, 경제회생을 위한 노력을 주문하는 등 깊은 관심도 표현했다.

김 전 대통령은 "내 정치활동 가운데 가장 미진했던 게 지역화합, 지역감정해소를 이루지 못한 것"이라면서 "내가 못한 일을 박 대표가 해달라. 박 대표가 제일 적임자"라며 지역갈등과 국민화합에 적극 나서줄 것을 당부했다.

이에 박 대표는 김 전 대통령에게 "앞으로 남북문제에 대해 자문을 구하겠다"고 공식요청 하자 김 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얘기가 되는 사람이다. 박 대표가 북한에 다녀온 것은 잘한 일이며 기회가 있으면 또 가라"며 적극적으로 방북을 권유했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은 "경제를 살리는데 총력을 기울여달라"고 당부하면서 "박 대표가 경제인을 만나 국민 심리를 안심하게 해달라. 제1야당이 안을 내고 여당과 정부와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국민도 지지할 것"이라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한편 열린우리당은 박 대표가 '유신피해'를 사과한데 대해 '개인차원의 사과'에 불과하다며 평가절하 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일부 중진은 나름대로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상당수 의원들은 '정치적 물타기'로 보거나 '정치적 자숙'을 요구하며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민주화운동으로 투옥된바 있는 장영달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은 대표적인 수난자 입장에 있었던 만큼 사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면서 "그러나 개인 마음의 일단을 피력했을 수는 있지만 역사 앞에 사죄한 게 아니라 개인 차원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장 의원은 "중요한 것은 5.16후 독재 헌법 이후에 숱하게 죽어갔던 영령들에 대해 분명하게 해명하고, 국민 앞에 사죄하는 것"이라며 "정치일선에서 떠나 자숙하는 분위기를 갖는 게 사람의 도리"라고 말했다.

하지만 같은 당 정세균 의원은 "돌아가신 분을 대신해서 그 딸이라도 과거를 인정하고 사과한 것은 좋은 일"이라며 "과거에 잘못되고 꼬인 것들을 푸는 노력을 하는 것은 평가할만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해 눈길을 끌었다.

심원섭/정치전문대기자 dailypen@massmedi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