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병희>

여권, 일시적 수세 벗어나 과거사 청산 작업 박차.. 당내 권력 역학 관계 일대 변화 불가피할 전망 - 부친의 일제강점기 일본군 헌병으로 복무한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적지 않은 곤욕을 치르고 있는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이 19일 오전 영등포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의장직 사퇴를 공식 발표할 것으로 알려져 향후 여권의 권력 역할 구도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신 의장은 18일 오후 여의도 광복회 사무실에서 김우전 광복회장 등 임원진을 방문하기에 앞서 자신의 거취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숙고중이다. 나에게 맡겨달라"고만 말했으나, 열린우리당 한 핵심관계자는 "신 의장이 선친의 일제하 헌병 복무 문제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기로 마음을 굳혔고, 이같은 심경을 천정배 원내대표와 당 중진의원들에게 전달했다"고 전해 사퇴사를 굳혔음을 시사했다.

또한 이날 오후 김부겸 당의장 비서실장도 기자들과 만나 "오늘 내일중 입장표명이 있겠지만, 오늘은 정리할게 있고 당 수습 방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모아야 하기 때문에 오는 20일 중앙위원회가 열리기 전에 입장 표명이 있을 것"이라고 밝혀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했다.

따라서 지난 5월17일 정동영 전 의장(현 통일부 장관)으로부터 의장직을 승계한 신 의장은 불과 3개월여 만에 자신들이 쳐놓은 '과거사 정국'의 역풍을 맞아 낙마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여권은 신 의장의 사퇴를 계기로 친일진상규명법 개정 등에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을 세우는 등 과거사 청산 움직임은 한층 더 가속도를 가할 것으로 보여 과거사 청산 정국은 여야간의 치열한 대립구도를 한층 가열시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난 15일 노무현 대통령이 8-15 기념사를 통해 과거사의 포괄적 청산을 강조한 이후 후속 조치를 서둘러왔던 여권으로서는 신 의장 선친의 문제로 인해 이같은 흐름이 중단되거나 좌절돼서는 안되며 오히려 새로운 전기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의장직 사퇴가 다소 지나친 것이 아니냐는 여권내 일부 의견에도 불구하고 신 의장이 사퇴 결심을 굳히게 된 데는 과거사 청산에 대한 여권 핵심부의 강한 의지가 감안된 것이 아니냐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실제로 열린우리당은 18일 오전 '과거사진상규명 통합입법을 위한 태스크포스' (단장 원혜영 의원) 첫 회의를 열어 이미 국회를 통과했거나 제출된 과거사 관련 법안 15개를 통합관리 할 수 있는 기본법을 제정을 적극 검토키로 했으며, 국회내 과거사특위 구성도 한나당의 반대로 무산되더라도 입법절차를 밟아 적극 추진하기로 하기로 했다.

이처럼 여당이 강공수를 두는 이유는 일단 신 의장이 사퇴 결심을 굳힘에 따라 여권은 일시적 수세에서 벗어나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과거사 청산 작업에 동참할 것을 요구할 수 있는 '도덕적 명분'을 확보한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여권이 신 의장의 사퇴를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전기로 삼아 야권에 대한 '과거사 공세'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며 경고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은 신 의장 선친 문제가 불거진 이후 박정희 전대통령 문제와 관련해 박근혜 대표에게 불똥이 튈 것을 우려해, 신 의장의 도덕성에 초점을 맞춘데 이어 '연좌제적'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박 대표와 신 의장은 경우가 다르다"는 논리로 미리 방어벽을 쳐왔었다.

이같은 한나라당의 경계심에도 불구하고 여권이 과거사 청산을 위한 입법절차를 힘으로 밀어 부친다면 오는 23일 열리는 임시국회와 9월부터 시작되는 정기국회에서도 최대의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될 전망이어서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개정국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편 정동영 전 의장에 이어 불과 3개월만에 신 의장이 낙마한 것은 지난 1월 정식 지도부 경선을 계기로 당내 주도권을 쥔 '천. 신. 정' 트로이카 체제의 사실상 퇴조를 의미한다는 의미에서 향후 가져올 열린우리당의 권력 역학관계에 일대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물론 당의 중심이 원내로 옮겨진 가운데 정기국회를 맞는다는 점에서 천정배 원내대표의 실권이 두 전임 의장의 공백을 상쇄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내년 초 치러질 전당대회를 앞두고 각 계파의 세력경쟁이 조만간 가시화되면서 합종연횡이 이뤄질 것이란 점을 감안하면 당권파의 장악력은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따라서 지난 1월 전당대회에서 3위를 차지한 이부영 상임중앙위원이 어떤 선택을 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당헌. 당규에 따라 이 위원이 승계하는 것은 사실이며, 이 위원 역시 "원칙과 순리, 당헌에 따라 하면 된다"며 의장직 승계에 무게를 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당내에서는 선출직 상임중앙위원 5명 전임 두 의장에데 4위를 했던 김정길 전 의원이 사퇴하는 등 가운데 5명중 3명이 사퇴하게 되는 상황이어서 비상대책기구를 구성해 정기국회를 치러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여서 조율 과정에서 진통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 이유는 이 위원이 의장직을 승계하느냐, 아니면 비대위안을 받아들이냐가 향후 세력재편의 방향타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인 까닭이다.

당권파로서는 '당밖세력' 출신인 이 위원이 기간당원 자격요건 문제 등 당헌, 당규 개정을 주도할 경우 당권이 넘어갈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 따라 비대위안이 전체적인 기류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당권파의 한 핵심 의원은 "한나라당 출신인 이 위원은 청와대와 '코드'가 맞지 않아 의장으로서 적합하지 않다"고 잘라 반대하면서 "당내 반발도 강하기 때문에 의장이 되더라도 비대위 체제 내에서나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이 한나라당 출신이라서 의장직을 맡길 수 없다는 당권파와 중진들의 반대론에 대해 이 위원은 "그런 식이라면 (전대에서의) 대의원 의사는 뭐가 필요 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그렇게 떠들도록 내버려둬라"고 받아쳤다.
 
또한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를 정점으로 한 비당권파 의원들도 당권파들의 '비대위 구성' 주장과 다를 바 없는 '이부영 불가론'에 난색을 표시하는 등 견제에 들어간 양상이다.

이인영 의원은 "개개인의 호불호 문제로 이 문제에 접근하면 아주 이상해진다"고 말했으며, 부산 출신인 조경태 의원도 "누군 되고 누군 안된다는 발상은 비민주적이다. 따라서 당헌. 당규란 민주적 시스템으로 해결하자"고 가세했다.

이처럼 당권파와 비당권파간에 갈등 심각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문희상 의원을 중심으로 한 노 대통령 직계그룹과 유시민 의원이 이끄는 개혁당 그룹도 적극적인 세확산에 나설 것으로 보여 열린우리당의 권력지도를 둘러싼 불투명성이 고조될 전망이어서 귀추가 조목되고 있다.

심원섭/정치전문대기자 dailypen@massmedi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