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한국노총이 지난 2월15일 국회앞에서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명예퇴직후 재취업.. 고용계약직 처우문제로 이어질 수 있어 - 지난 97년 IMF이후 국내 경제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한 '강도높은 구조조정'추진이 줄곧 제기돼 왔지만 정부의 실천의지가 미비한데 다 노동계의 반발도 거센 상태여서 이를 제도적으로 정착하기에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특히 노동계의 잦은 입금투쟁 및 노동조건 개선 요구는 해마다 치러지는 고정 행사로 자리잡고 있는 상황이고, 사업자 역시 노동계가 요구하는 조건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사업경영상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IMF이후 국내 사업장들은 앞다투어 명예퇴직과 같은 제도를 도입, 구조조정에 나선 것은 사실이다. 또 명퇴자에 대한 엄청난 퇴직수당 지급도 기업에 상당한 자금부담을 안겨줬다.

그러나 명퇴한 퇴직자가 퇴직수당을 받고 퇴직을 한 뒤에도 또다시 그 회사에 임시고용직으로 채용돼 근무를 하게 되면서 기업들의 고용형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같은 제도가 정착되면서 기업으로서도 정규직 근로자 채용보다 상당히 효율적으로 근로효과를 얻을 수 있는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노동계가 주장하고 있는 고용직 근로자들의 처우 개선 및 근로조건 개선 요구는 바로 명예퇴직에 이은 고용직 채용제도가 만들어 낸 또 하나의 폐단으로 지적되고 있다.

구조조정 당시 대부분의 사업장들은 이들을 명퇴시킨 후 다시 고용직으로 채용, 명퇴자들이 그동안 쌓아온 업무추진 능력은 그대로 활용할 수 있으면서, 이들에 대한 처우조건은 고용계약직 기준을 적용하면 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이들은 고용계약직의 근로조건 개선 및 정규직과의 차별화 금지를 내세우며 사업장에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고 있으니 기업으로서는 전혀 예상 못한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현재 정규직과의 차별화 금지를 주장하는 고용계약직 근로자들 중 대부분은 기업에 장기적인 노동력을 제공하면서도 근로자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장기고용직 근로자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들 중에는 명퇴금을 받고 또다시 사업장에 채용돼 일을 하면서 정규직 근로자와 같은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지난 27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외환위기 후 기업부문의 건전성은 괄목할 정도로 개선됐지만, 기업부분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현재보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지속적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구조조정 성과에 대한 평가'라는 보고서에서 KDI는 "영업이익 등 사업성 성과가 전반적으로 외환위기 이전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러 있고, 여전히 고기술산업군 등에서 부실징후 기업들이 잔존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KDI는 "부실이 이미 표출된 기업의 경우 시장규율에 따라 회생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만 구조조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하며, 회생가능성이 희박한 부실기업을 연명시키는 것은 경쟁제약과 경제 효율성 저해 등 면에서 신속히 도태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KDI의 이같은 지적은 이론적 측면에서 볼 때 아주 정확한 시장논리로 적용된다. 그러나 기업들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인한 실업자들의 증가, 또 이들의 재취업 과정에서 빚어지는 고용계약직 등의 처우개선 문제는 또 다른 사회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구조조정은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앞서 정부와 기업, 경제단체 등의 실업에 따른 효율적 대처방안의 선행이 중요하다. 또한 현재 미비 된 고용계약직의 근로조건 처우 개선에도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임할 때 노동계의 투쟁 열기는 가라앉게 된다.

권혁철 기자 khyukc@massmedianews.com